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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NOTE

도쿄 DAY1. 이케부쿠로의 밤, 덕후의 성지를 엿보다


일본 도쿄로 여행지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새로운 것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트렌드를 타는 세련된 물건이나 문화, 전시들이라 하면 더 정확하겠다. 그러기에 이곳은 가장 가깝고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이다. 대신 방사능국이라는 단점이 생겨버렸으나 그걸 신경쓰기엔 이미 5년 전 후쿠오카를 출장으로 다녀갔기에. 


10년 전,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보너스처럼 보내줬던 도쿄여행이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그 때 받았던 새로움과 온갖 귀여운 문물을 보며 느낀 재미들을 다시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엔 드디어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혼자인 첫 여행이기도 했다. 지금까진 주로 같이 갔다가 따로 다니거나, 혹은 내가 혼자 남아 더 있다 왔던 여행들이었다. 



이제 나의 여행 이야기에서 예상되는 주의점 몇 가지. 

1. 하루 일과가 길다 

2. 고로 사진도 과하게 많다 

3. 그대로 일정을 따라하면 피곤해 질 수 있다

4. 대강 먹고 다니기 때문에 먹을 건 볼 게 없음 

5. 맘에 드는 것들은 따로 빼겠지만 전체적인 이야기(포스팅)는 나 편한 대로, 시간 순서대로 진행

6. 보는 관점에 따라 매우 피곤한 여행 혹은 알찬 여행





그리하여 대망의 여행 날 새벽. 사선으로 강하게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느긋하게 따스한 스타벅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여행책을 읽다가 탑승해야지, 라는 꿈 같은 계획이 있었지만 결국 빠듯한 도착해버린 시간, 중국 연휴로 공항에 가득 찬 사람들, 추위를 너무 걱정하여 두텁게 입고 간 옷으로 인해 땀만 뻘뻘 흘리며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공항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저 궂은 날씨 덕분에 내가 탄 오전 10시 출발 비행기는 계속 출발이 지연되어 잠만 자면서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정오가 되어서야 출발한 비행기의 점심식사. 기내식은 언제나 맛있게 먹는다. 






2시 15분 나리타 공항에서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신주쿠로 향하는 길이다. 처음 타 보는 것이라 표를 끊는 것 부터 무척 긴장했다. 10년전엔 공항에서 지하철 같은 것을 타고 아기자기한 집들로 가득한 마을 풍경을 보며 갔던 것 같다. 10년 전이라니,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라 생각할 때 마다 당황스럽다. 





차량 내에 두세 명의 중국인 말고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쾌적하게 목적지로 향했다. 자꾸 끊기는 와이파이를 연결해 필요한 정보들을 검색하면서 목적지에 도착. 





오늘의 숙소는 이케부쿠로에 있다. 오로지 이 숙소에 묵기 위해 이케부쿠로에 온 것이다. 





이 건물 안에 첫 숙소가 있다. 이 글을 올리는 지금에야 한참 되었지만, 여행 당시(12월)에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후기도 몇 없던 매우 핫한 숙소. 이 숙소가 매우 재미있는 경험이었으므로 따로 올리기로 하고 생략.  


숙소에 짐을 놓기만 하고 나왔는데도 밖이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이케부쿠로는 처음인데, 벌써 이렇게 밤이 되다니! 마음이 성급해지면서 새로운 것은 다 구경하고 싶은 내 본능에 불이 붙는다. 덕후의 성지라는 이케부쿠로, 숙소 때문이 아니었다면 따로 올 일이 없는 곳이지만 막상 온 거, 다 봐야 할 것 아닌가 싶은 마음.





다들 퇴근하는 모양인지 거리에 사람이 가득한 횡단보도 앞. 길을 건너면 펼쳐지는 저 거리에 어떤 재미난 게 있을까 마음이 설레인다. 

 




펼쳐지는 풍경은 그냥 평범한 번화가 같은데, 어딘가 큰 쇼핑몰에라도 들어가야 이 동네의 '오덕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던 차. 





읽을 수 없는 간판들이지만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풍경들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그 무언가.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덕후를 맞이하는 입구도 있는 갖가지 '게임 센터'들. 놀이동산을 구경하는 기분으로 게임 센터 몇 곳에 들어가 보았다. 





뀨?

라고 써 있으면 어울릴 것 같은 캐릭터가 눈에 들어오는 풍경. 





밴딩머신들이 주루룩 늘어선 풍경들은 가히 장관이었다. 게임 센터마다 취급하는 기계들도 조금씩 달랐다. 사진 속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동전을 넣고 뽑는 사람이 꽤 많았다. 나는 이런 뽑기는 좋아하지 않아 전혀 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으나, 매우 황당하거나 웃긴 물건들이 들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가득한 곳이었다. 





무릎담요를 굳이 밴딩머신으로 뽑아야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매우 평범한 내용물.  





당시 스타워즈 개봉일을 앞둔 시점이었던지라, 어딜 가나 스타워즈 지분률 가득. 

급히 들어온 스타워즈의 어설픈 인형들에 밀려나 거꾸로 꽂혀버린 고양이들 어쩌나. 





훈제연어를 캐릭터화하다니. 그건 둘째치고 대체 뭘 뽑을 수 있긴 한 건지. 저 집게로 뽑을 수 있는 물건의 크기와 무게는 어디까지이기에 저런 큰 박스가 들어 있는가.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그저 궁금해 할 수밖에 없다. 





대체 왜 이 거대한 먹거리를 그냥 편의점에서 사지 않고 힘겹게 뽑기로 뽑아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으나... 





더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풍경도 있으니. 

왜, 왜. 이 길고 큰 칼을 이 기계 안에 넣어 놓고 이 고생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대체 왜?'를 속으로 백 번 외치는 것이 나의 몫. 






게임센터마다 이런 직원들이 있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옷차림이 저런 스타일(베스트+이상한 핏 바지)이었다. 

문 앞에 나와 호객행위를 하거나 매장 내부에서 마이크를 통해 뭔가를 이야기하며 안내한다. 허리춤에 달린 탬버린은 혹시... 누가 물건을 제대로 뽑았을 때 쳐 주는 용도인가 짐작해본다. 






게임 센터 안에 있는 것들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복잡하고 조잡스러울까 연구한 것 처럼 이렇게... 

돈 바꾸는 데에 선택사항이 너무 많은 것! 안 그래도 결정장애가 많은 현대인에게 돈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련을 주는 것인가. 







내가 이곳에서 본 것들 중 가장 귀여웠던 내용물. 백도라에몽. 물론 이것 역시도 굳이 저렇게 거대한 사이즈를 뽑기로 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이 안에 있는 도라에몽이 행복했음 됐지 뭐. 







구경을 마치고 원래 가려고 했던 '선샤인 시티' 로 향한다. 오래된 웨딩홀 같은 통로의 꾸밈새가 심상치 않다. 





여행지에서의 첫 끼, 저녁 먹을 장소를 물색하다가 힘들게 고른 곳 타이거 봉봉. 




맛없는 메뉴를 고른 탓에 별 감흥 없이 배를 채우고 나왔다. 피클도 하나 없이 달랑 저것만을 먹는 것이 꽤 힘들었다. 

나름 첫 끼의 선택의 실패가 안타까웠지만 나는 먹는 것 고르는 데엔 재능이 없으니 그러려니 한다.




먹었으니 이제 다시 선샤인 시티를 구경한다. 



도라에몽과 어디로든 문! 






선샤인시티에 자리잡은 포켓몬 센터에 들어왔다. 역시 일본이다. 캐릭터를 조각조각 내어서도 상품화한다. 





잠자는 포켓몬들. 





피카츄 컵라면! 맛이 문제니, 귀여워서 사는 것이다. 살 뻔했지만 참았다. 






피카츄를 모티브로 잘 만들어진 다양한 그래픽 스타일이 적용된 상품들이 가득했던 탓에, 캐릭터회사의 디자이너였던 그 시절 모드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잘 정리된 스타일가이드의 실물들을 보는 느낌. ' Chiku-Chiku Sewing'이라는 봉제과 관련된 컨셉을 바탕으로 디자인된 듯한 이 스타일들은 12월의 연말 분위기와 잘 맞았고 해리스트위드를 사용해 소재에서 느껴지는 따스함도 있어 다른 스타일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었다. 라고 자꾸 왜 감상이 쓸데없이 업무 모드로 표현되는 걸까... 




포켓몬센터를 나와 이 선샤인시티에서 유명하다는 J-World 입장권을 끊고 구경해 볼까 말까 하다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 덕후의 성지인 이 동네를 엿보기만 할 것이므로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문 닫기 전에 도큐핸즈나 구경해야겠다 싶어 다시 발길을 급히 옮김. 




아직도 지우개를 가지고 이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만드는 나라가 여기 말고 또 있겠나. 물론 뭔가 이 광경에 홀려 나도 하나 담아 볼까 싶은 마음 몇 초간 들었으나 떼어내고. 





추억의 물건들을 파는 듯한 이 가게를 한참이나 구경했다. 우리나라 곳곳의 소품샵에서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물건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아무래도 참수형을 당한 것 같은 너희들. 






예상치 못한 아이폰 활용... 






도큐핸즈는 일본에 갈 때마다 가장 즐거웠던 곳이다. 





연말에 일본에 오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다양한 달력들을 구경할 수 있는데, 예상치 않은 디자인과 주제로 경악스러운 디자인도 많다. 그만큼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키는 디자인이 존재하고, 또 그 수요가 있기에 이 큰 매장에 진열되 있는 터일 테니... 일본에게 그것은 부러운 점.  


여튼, 이건 스티브 잡스가 보면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 같은 달력이다. 하단에 그림들 왠지 석고뎃셍 예시작 느낌. 





이 때 샀어야 하는데, 하고 나중에 통탄한 물건 중 하나. 치아 달력은 이 지점 말고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괜히 미뤘어. 






이것은!!! 

이 디자인과 이 구성 그대로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니. 연필 꽃는 저 곳, 자석과 시간표 삽입 부분까지 그때 그 시절 그대로가 느껴지는 필통에 잠시 추억에 젖었다. 고학년 되면 천 필통 써도 된대서 저 사각 필통 졸업하기를 얼마나 기다렸었던가... 





그리고 도큐핸즈 이케부쿠로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엄청난 코너. 

이 코너에서 혼자 속으로 백 번 감탄사를 외치며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바로 구강관리용품 코너인데 마치 구강관리 끝판왕의 매장 같은 느낌... 구강관리에 한이 맺혔나 싶을 정도. 



일단 이렇게 간결한 칫솔 디자인에 깔끔하게 단색이 입혀진 칫솔들. 





이런 깔끔한 디자인의 칫솔들이 한 회사가 아니라 여러 회사에서 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솔의 크기나 굵기, 모의 부드러움의 정도, 칫솔 머리의 크기 등 무척이나 세분화되어 있는 충격적인 풍경. 일본어를 단 한 글자도 읽지 못하지만 친절하게 진열된 샘플로 이 분류들을 눈치껏 구별할 수 있었고 내가 늘 원하던 자그마하고 부드러운 솔이 달린 칫솔을 고를 수 있었다. 


 




기본 칫솔군이 그득히 한 자리를 차지한 이후에는 이렇게 요상시러운 모양들의 더 섬세한 부위용 칫솔들도 있고. 





스웨덴산 TePe 칫솔이 무지개 빛깔로 쫘르륵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도 있다. 아아. 






새로운 기능이 있는 듯한 신기한 칫솔도 있고. (나중에 찾아보니 치약없이 이를 닦는 칫솔이라는) 





물감을 컨셉으로 잡았나 싶기도 한 Breath Palette 치약. 31가지 매일매일 다른 향 치약. 






꽤 거칠거칠할 듯한 모가 달린 칫솔들. 






닦으면 바로 잇몸에서 피 날 것 같은 무서운 칫솔들까지. 







치간칫솔도 이토록 어여쁘게. 구강용품에 쇼핑욕이 일어나다니 정말이지 맙소사다. 






구강용품 코너가 끝날 줄을 모르고 펼쳐진다.  



커다란 마트에 가도 그저 '부드러운 모' 정도의 문구만을 믿고 샘플도 하나 만져볼 수 없었던 4-5개들이 칫솔을 구입해야만 했는데 이렇게 세분화되어 있으니 마치 칫솔의 천국에 온 듯. 자그마한 솔의 칫솔 두 가지를 이 날 구입했다. 

일단 '첫 날' 이니 나중에 시부야나 신주쿠 지점에서 많이 사 가야지, 라고 생각했던 그 때의 내가 참 밉다. 이 날 다 샀어야 해! 




도큐핸즈 이케부쿠로 점은 다른 코너도 다른 지점에 비해 좋았지만 무엇보다 구강용품 코너를 잊을 수 없을 것.


구경하다 보니 금새 10시, 문 닫는 시간이 되어서야 몇 가지 물건의 계산을 한 후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거리의 가짜 음식들. 

이런 음식모형은 왠지 외로운 느낌이 든다. 





밥과 화려한 간식이 공존하는 요상스러운 진열도 뭔가 외로운 느낌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저녁부터 둘러본 탓에 이케부쿠로를 샅샅이 볼 순 없었지만, 나름 재미있게 둘러본 여행 첫 날이었다. 

그리고 아직 여행 첫 날이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 이제 이케부쿠로에 온 목적인, 숙소에서 놀아야지. 이제 숙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