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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NOTE

도쿄 DAY3. 전시관람의 날, 프랭크 게리 전시@21_21 디자인 사이트


도쿄 여행 3일차는 미술관 투어, 전시 관람의 날. 





이 방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나름대로 샤방한 아침.  





어젯밤 편의점에서 사 두었던 아침을 먹으며 여행책을 둘러 보는 한가로운 아침. 


패밀리마트의 PB상품들이 대체로 디자인이 깔끔해서 손이 가기에 계속 PB 상품만 잔뜩 사 먹은 것 같다. 

미(味)각은 발달하지 못하고 미(美)각만 발달한 나이기에... 



그리고 일본 편의점의 PB상품을 골랐을 때 결코 실패가 없었으니 돌이켜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늘 그렇지만 음식 고를 땐 내 호기심과 모험심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숙소를 나서 역으로 걸어가는 길. 역으로 향하는 이 길이 참 깔끔하고 한가로워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 이렇게 깔끔하고 예쁜 자전거들을 세워 두고 밤을 날 수 있다니.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를 살 때 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부러운 풍경이다. 

녹슬어서 쓰러져 가는 듯 한 자전거가 아닌 이상 실내에 들여놓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자물쇠가 있다 하여도 제 모습을 유지하면서 탈 수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바구니를 달고, 또 바구니를 감싸는 커버까지, 이런 점들은 정말 일본이다 싶다. 

최근 바구니를 달 수 있는 자전거를 새로 장만할까 하고 알아보다가 포기했는데, 정말 그...'여성용 자전거' 라고 통칭하는 그런 자전거들에 달린 바구니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았기 때문이다. 멋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바구니들. 외국 스트릿 사진 속 다양한 크기와 재질의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들을 보고 괜히 마음이 동했다가 말았다.


이래저래 자전거를 볼 때마다 부러워지는 마음이다. 타고 다니는 모습보다, 이렇게 공공장소에 세워져 있는 모습이 더 그렇다.

 





자전거 세워진 풍경을 부러워하며 지하철에 오른다.

오늘은 긴자에 간다. 






긴자, 미드타운에 도착했다. 미드타운 곳곳에 붙은 빨간 그래픽이 12월임을 느끼게 준다. 





과하지 않고 딱 적당히 멋스러운 12월의 크리스마스 그래픽이 마음에 들었다. 






21_21 디자인 사이트에 가기 위해 공원으로 나왔다. 

여기서 잠깐, 아침의 당 충전을 위해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야지... 이것도 어젯밤에 샀던 편의점 커피. 





커피 마시면서 21_21 디자인 사이트를 향해 걷기. 

이 산책로가 너무 산뜻하고 예쁜 데다가 아침의 햇살도 따스하게 내리쬐어 그야말로 미술관의 하루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아침이었다. 





전시를 보다 배가 고파지는 것 보다 왠지 먼저 먹고 나중에 배가 안 고픈게 낫겠지 싶어서 또 간식을 꺼내서 벤치에 앉았다. 

이것도 또...어제 산 편의점 간식.

햇살 아래 먹으니 꿀맛. 



여행 내내 날씨가 한국의 겨울보다 훨씬 따스해서 여행 내내 좀 덥게 느껴졌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12월에 차가운 커피를 야외에 앉아서 먹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 따스한 날씨가 그것을 실현시켰다. 





벤치에 앉아서 빵 먹으면서 보는 풍경도 평화롭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개들과 산책 중. 

나도 평화로운 마음으로 간식을 다 먹고 전시를 관람할 마음가짐 준비. 






들어가기도 전에 섬세한 물건들에 감탄이 난다. 저 알림판을 지지하는 물통, 딱 저 받침 용으로 만든 것 같다. 

보통 저런 것들은 벽돌이나 무거운 무언가로 지지하여 못난 풍경을 연출하는데...아예 저런 물건을 만들어 버렸구나. 







프랭크 게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 오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던 전시. 

오늘의 첫 번째 전시는 프랭크 게리의 'I have an idea'. 






게리의 대표작들을 커다란 벽에 영상으로 전시한 첫번째 섹션을 지나

두번째 섹션이 시작되는 전시장으로 들어왔다. 


두번째 섹션의 제목인 'Gehry's Room' 답게 영감을 얻는 것들이나 개인적인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요즘 거장들의 전시장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섹션이지만 이런 섹션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면모를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것이 혹여나 작가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위해 꾸며낸 것일지라도 말이다. 










산타모니카에 있는 게리의 집. 

모형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사진 참 좋다. 이 주방 사진 한 장만으로도 이곳에서의 주말이 그려지는 듯 하다. 





커다란 영상 속 프랭크 게리가 읽고 있는 것은 벽에 붙어 있는 저 매니패스토. 





이 전시와 어울리는 구깃구깃 구겨진(구겨진 것) 종이에 씌인 매니패스토. 

무척 커다란 크기인지라 저 자체로도 하나의 작품 같았다. 





3번째 섹션은 Idea Evolution. 










일일이 설명을 읽지 않아도 어떤 형태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이것이 발전해 나가는지를 알 수 있는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저 단순한 모형일 뿐이지만 하나하나 책에서 사진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역시 다르다는 것을 체감했다. 


한편으로는 정말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 보면서' 실천하고 느끼는 것, 에 대한 생각들도 머릿속에 내내 맴돌았다. 

훌륭한 전시나 작품을 보면 늘상 느끼고 반성하는 점들인데 이 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보면 되는... 그런 점들. 마냥 천재 같고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듯 한 사람들의 뒷면엔 이런 세세한 노력들이 늘 함께한다는 것. 





만드는 것 자체도 쉽지 않겠다 싶었던 모형들. 





위의 모형의 디벨롭 과정.





위 모델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


게리의 건축 모형들은 내가 보아 왔던 '건축 모형'에 대한 생각을 깨는 특이한 모형들이 많았는데, 아주 추상적이고 새로운 질감의 모형들로 시작한 아이디어가 점점 '건물 같이' 현실화 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그저 단순히 건물이 되기 위해 거치는 디벨롭이라기보다는 생각의 변화와 어떤 고민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욱 좋았다. 

 




위 모형들을 거친 마지막 프리젠테이션용 모델. 

이 건물은 저기 저, 사진 우측상단에 있는 색색깔의 나무 블록에서 시작되었다. 









상상 이상의 어마어마한 게리 파트너스. 

영상으로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일단 이 거대한 책상과 모형들이 모두 한 층에 모여 있다는 것부터 압도적. 거대한 과실 같기도 하고. 





I like clutter. It is comforting.

I know it's time to get about 50 percent of it out of here, but it's inspiring to me. 








단순한 네모 덩어리들에서 시작해 어떤 쓰임을 가진 건물이 되어 가는지.








I don’t look for the soft stuff, the pretty stuff.

It puts me off because it seems unreal.  





I'm self critical, so when the building is finished, 

I always hate it. It takes me a couple of years get over it. 


늘 주목받는 거장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은. 







전시장 벽면으로 전개되는 섹션 4 'Idea Realization'. 




그리고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게리의 건축을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설계 기술 'Gehry Techonologies'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었던. 









창가의 테이블엔 게리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들이 있어 앉아서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것도 좋다. 

공간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다 좋은 이 마음은, 아무래도 여행으로 와서 전시를 보러 오는 것이라 그런지 감흥이 배가 되어서인지 모르겠다. 



4번째 섹션까지 전시를 보고 떠나기가 아쉬워 처음부터 한 바퀴를 더 돌았다.

하나로 넓게 펼쳐진 전시장도, 전시장 곳곳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씌인 반짝이는 은색 글자의 어록들도 좋고. 

(일본어도 못 하지만 영어도 못 하니 문장들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 일본 여행 와서도 영어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시장에 돌아다니는 스타일리쉬한 차림새의 일본인들이 주는 느낌까지도 합쳐져 그날의 전시장 분위기를 만드는 듯 했다. 

그래서 그냥 나가기 아쉬워 한 바퀴를 더 돌며 전시장의 분위기를 더 즐기고 싶었던 마음. 







가장 감흥이 덜 했던 다섯번째 섹션을 거쳐, 





마지막 통로의 천장에까지 어록이 새겨져 전시장을 나서는 이를 배웅한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엔 펼쳐진 잡지 속 사진들로 주요 작품을 한 번씩 다시 보여 주는 요런 섹션도. 

이 아래에서는 마침 게리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있어 (물론 일본어로) 그 풍경을 보며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도 볼 수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샵. 

도록이 있었다면 바로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게 나왔는데, 따로 도록은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샵을 구석구석 보고, 

 




그래도 그냥 나오면 아쉬우니 게리의 특집으로 나온 까사 브루터스를 사들고 나왔다. 

다들 같은 마음인지 전시장을 나서는 많은 사람들 손에 들려진 건 이 책이었다. 


서울에서도 살 수 있는 책이지만, 이 전시를 보고 나온 이 순간 사는 기분이란 게 있으니. 






첫 번째 전시 관람을 마치고, 좋았던 이 길을 걸어 다음 목적지로. 


이 글을 올리는 지금 보니, 이 마지막 사진을 찍은 게 오후 2:40분 경. 나는 이 때까지 밥도 안 먹고 전시를 보고 있었구나. 

결국 어제 밤에 산 편의점 간식들이 나의 브런치가 된 셈이었다. 



이제 길을 걸어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다음 목적지는 도쿄 국립 신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