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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NOTE

도쿄 DAY3. 전시관람의 날, 니키 드 생팔 전시와 무라카미 다카하시의 오백나한도전


21_21 디자인 사이트에서 프랭크 게리 전시를 관람한 후, 걸어서 도쿄국립신미술관으로 향했다. 원래도 잘 걸어 다니긴 하지만, 스마트폰과 구글맵만 있으면 어디든 더 편하게 찾아갈 수 있게 된 세상. 





도쿄국립신미술관 도착. 





미술관 건물로 들어가기 전 잠시 한눈을 팔게 한 우산의 전당. 비 오는 날 장관이겠다. 





도쿄 국립현대신미술관에선 오늘 이 작가의 전시를 보려고 한다. 니키 드 생팔의 전시. 


그나저나 벌써 3시가 훌쩍 넘어 무척 배가 고팠다. 

걸어 오는 길에 딱히 식사를 할 만한 곳도 찾지 못했고 해서 박물관 내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한다. 






주문하고 나온 것은 아무래도 인스타용 예쁜이 밥. 아, 어딜 가나 박물관 밥은 맛없다. 

그나저나 저 거꾸로 된 집 모양이 왠지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느낌. 




이거였다. 건물의 평면도를 쌀밥으로 구현했구나. 맛이라도 없다면 멋이라도 있어야지. 맛이 없어도 에너지 비축을 위해 열심히 먹고 일어나 사물함에 짐을 맡기고 전시를 보러 나선다. 





사실 니키 드 생팔이라는 작가에 대해 책이나 뭐 한 줄 읽은 적, 그림을 본 적도 없어 딱히 아무런 기대도 없이 들어간 전시였다. 

그저 이 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시니 봐야겠고, 괜찮겠지 뭐 - 하는 정도의 기대감으로 티켓을 끊었다.  



전시 초입은 사격을 이용해 오브제를 쏘아 물감이 흘러나오게 하는 그녀의 영상과 초기 회화 작품들이 있었고, 그때까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해 가는 작업의 스타일과 그 표현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관람이 주는 즐거움이 이런 건가 싶게 흥분되는 마음. 


특히나 편지로 쓴 사랑스러운 드로잉들, 여성의 자궁 속으로 관람객이 들어가도록 설계한 설치 작품, 그리고 풍만한 몸에 원색적인 색을 가진 여성 조각들'나나'들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작품 뿐만 아니라 전시의 순서와 구성도 훌륭해서 이 작품들이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전시장 내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관람객들의 SNS에 올라온 사진이 모두 이 작품, 'Buddha'의 같은 뷰라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아, 전시 정말 좋았다. 대규모 회고전인만큼 작품의 양도 방대했고, 전시의 말미엔 니키의 작품을 활용한 향수나 와인 등 상품까지 볼 수 있었다.






전시장 출구에 있는 아트샵에서. 책 표지가 너무 팬시한 것이... 참 일본스럽다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 마츠다 요코가 니키 드 생팔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는데, 전시장 안에도 이 둘과의 관계를 다룬 섹션이 따로 있었다. 주고 받은 편지와 작품, 만나서 찍은 사진들, 니키 박물관에 대한 계획과 모형 등 그 관계를 한 섹션으로 다룰 수 있는 정도의 양이라 대단하다 싶었으니 이렇게 책으로 나올 만 하다 싶긴 했다. 한국어로 있다면 나도 읽어 보고 싶을 정도이다. 





전시가 그렇게나 좋았는데 뭐라도 하나 집어들어 이 감동을 가져가야겠다 싶었다. 


그러나 상품들은 딱히 괜찮은 것이 없었고, 역시 이 작품들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엔 도록만한 것이 없지. 

혹시나 싶어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 니키 드 생팔을 다룬 책도 절판된 한두 권 밖엔 없더라. 

그래서 핫핑크가 강렬한 저 도록과 엽서 두 장을 결제하고 전시장을 나왔다. 







전시장을 나와 미술관을 한 바퀴 구경할 계획이었는데, 벌써 창문 밖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시간이 늦어 다 구경할 수 없을 것 같아 3층까지 올라가 흩어 보면서 내려오며 저 아랫층에서 커피를 마실까 무척 고민이 되었으나... 미술관이 문 닫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이 있으니 단념. 





바로 아트샵. 안 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제는 안 보고 지나갈 수 없는 필수 코스. 

게다가 여행으로 왔다면 더더욱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미술관 문 닫을 시간이 다가와서 조급한 마음을 안고 구경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속속들이 구경하고 나왔다.





1층에는 따로 연말연시를 위한 상품샵이 마련되어 있어 이 곳도 재미있게 구경했다. 

전시를 오래 관람한 탓에 시간이 빠듯했지만 그래도 문 닫기 전까지 하고 싶었던 일들은 다 해서 뿌듯. 






예쁜 봉투에 담긴 물건들을 정리하고 사물함에 넣었던 짐을 챙긴 뒤 다음 일정을 잠시 고민했다.


하루에 이렇게 좋은 전시를 두 개나 봤으니 더 보는 것은 과하다. 이대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 하루를 마감할 것인가. 

아니야. 아직도 시간이 이른데 이 즐거운 기분을 몰아 더 재밌는 무언가를 또 보는 건 어떤가.  






마음은 꿈틀꿈틀 후자로 움직여 나는 또 걷고 있다.

롯본기 힐즈의 모리아트뮤지엄은 늦게까지 하니 그곳에 가서 전시를 하나 더 볼까 했다. 


걸어가는 길에 배가 몹시 고파지기 시작했다.   





12월 초입이지만 여기는 이미 크리스마스. 

책에서 찾았던 롯본기 힐즈의 맛집들 한두 곳을 찾아갔다가 만석으로 들어가지 못해 결국은 처음 마주쳤던 1층의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다. 





앉을 자리도 없어 보이는 이 곳에서 뭐라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맛있는 핫도그와 더 맛있는 핫 와인을 사들고 간신히 자리에 앉으니 순간 천국이다.

제대로 먹으려던 저녁식사는 실패했지만 이것도 무척 만족스럽다. 





개들도 털옷 입고 유모차 안에서 음식 먹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모리아트뮤지엄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





오늘 너무 전시를 많이 보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또 이렇게 코앞에 다가오니 설레인다. 





모리아트뮤지엄에서 볼 전시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오백나한도전. 





오백나한도가 펼쳐지기 전, 전시의 초입에 있던 작품들 중 '욕망의 불꽃'에 비친 나.





이글이글 강렬한 욕망의 불꽃. 






그리고 펼쳐진 오백나한도. 사진에 한번에 담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크기. 





100미터 가까이 되는 그림의 크기도 어마어마하지만, 그 화려함과 복잡한 디테일들이 혼을 쏙 빼놓는 듯 하다. 

눈이 피곤해질 것만 같은 이 나한도는 같은 크기가 4개의 시리즈로 그려졌다. 






어마어마한 나한도를 다 보고 나면 이렇게 나한도 그림 속 소재들에 대한 설명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전시에서 그림들 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던 건 이 섹션. 

그림을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의 과정과 노력을 전시하는 섹션인데, 마치 이것을 전시하기 위해 시작부터 이렇게 잘 모아 두었을 것 같다. 


마치 50년 외길인생 걸어온 거장의 회고전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 같기도 해서 재미있었고. 

그만큼이나 많은 인력들이 이 작품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의 물리적 증거일까. 





세세히 보면 더 재미있는데 내가 일본어까지 알았다면 몇 배나 더 재미있었겠지. 






스태프만 200명을 데리고 작업했다 한다. 영상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자료 조사에서부터 스케치, 디지털화에서 다시 수작업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무라카미 컴퍼니'에서 생산된 거대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 '과정의 탑'을 여러 번 돌면서 감탄하고 놀라워했다. 






영상 속 스태프들의 모습.

어느 학교 학생들을 단체로 데리고 작업했는데, 물감 투성이인 애들의 옷 사이에서 무라카미의 바지가 매우 깨끗한 것이 괜히 기억에 남는다. 하필 그 날만 깨끗했겠지! 하하. 





작업 과정 또한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장소와, 많은 과정들을 거치더라. 

그래서 이 과정에 대한 영상도 무척 재미있게 관람. 

\



무라카미 다카시의 '오백나한도' 전시는 그냥 대놓고 '이것이 일본이다!' 라고 외치는 듯 한 전시였다. 

단지 그림의 내용이 그런 것이 아니라 기획부터 표현, 게다가 그것이 실행되는 모든 과정까지 전시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을 다시 상업화시켜 최대한 많은 종류의 '굿즈'로 만들어 낸 이 모든 과정들이 딱 일본스럽다고 느껴졌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 상품샵 입구에서 이 '뽑기'를 마주하게 된다. 정말이지 일본이라서 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그래도 미술관에서 이런 굿즈를 준비했으리라고는 짐작 못 했던 상품. 





아무리 그래도 사고 싶진 않아서... 






이미지를 이용해 뽑아낼 수 있는 가능한 한 많은 종류의 상품들을 만들기로 작정한 듯 한 모습이다. 






상업성으로 인해 작품의 이미지가 해쳐지는 것을 걱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반대인 느낌. 

이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해도 놀래지 않겠다. 






저렴한 상품만 있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퀄리티 피규어도. 





고퀄리티 피규어와 뽑기에 든 저가 피규어 사이에서, 중간 가격대를 노린 금칠한 피규어도 있고요. 


전시를 관람한 후 상품샵을 보는 것 까지가 이 전시의 관람이다 싶었다. 매장까지 모두 놀라웠다. 

작업의 소재가 재미는 있으나 저 그림이 그려진 물건들이 갖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사랑스럽거나 예쁘지 않기에, 물건이 많이 팔릴까 싶었다. 

쓸데없는 것 꼭 사는 나도 이 매장에서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전시는 몇 년 간 세계 곳곳을 순회할 테니 거기까지 생각하고 만들었으리라 싶더라. 내가 지금 무라카미 다카시의 재고 걱정 해 줄 때니. 







그리고 롯본기 힐즈 들어설 때 본 스타벅스. 가기 전에 저기서 커피 한 잔 해야지 했던 곳. 





들어설 때의 바램대로 이곳에 자리잡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사람들이 북적북적. 





어제오늘 쓴 영수증 정리도 하고 sns도 하고, 숏사이즈 커피 한 잔 마실 동안만 잘 앉아 있다 나왔다. 






늦은 밤, 재미있는 전시를 하나 더 보고 떠나는 롯본기. 







그리고 금새 신주쿠에 도착했다. 






주택가인 골목으로 들어오니 시간이 늦은 것이 실감이 난다. 

아늑하게 불 켜진 내 숙소의 입구. 





밤에 예쁘게 빛나는 아파트먼트 호텔 신주쿠의 간판. 






이 숙소의 마지막 밤이라, 이 방도 사진으로 기록해 둔다. 아, 이 방은 다시 봐도 부끄럽다. 






숙소에 들어올 때 절대 빈손으로 들어오지 않게 된 야식의 습관. 

여행 와서 살을 더 찌워 가겠다는 무의식의 발현인건지, 심지어 사 오는 것도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그러나 고칼로리임엔 분명한 것들... 





밤에 뜨거운 커피가 먹고 싶은데, 숙소에 돌아올 때 즈음엔 모든 카페가 문 닫는 시간이라 사 온 커피.

근데 이렇게 맛 없을 수가... 한 입 먹고 안 먹었던 최고 맛없는 커피.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