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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NOTE

도쿄 day6 오모테산도의 날, 그리고 네즈 미술관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이날은 그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오모테산도를 구경하며 네즈 미술관까지의 방문을 생각하고, 다른 날과는 달리 아주 여유롭게 일정을 생각하고 느즈막히 나섰다.






오늘은 여유로운 날로 지정했으므로, 아침도 여유롭게 먹을 참. 하라주쿠역에 도착해 근처를 돌아보며 고민하다, 지난 번에 이 앞에 긴 줄이 늘어섰던 것이 기억나 이곳을 선택했다. 하라주쿠의 '에그앤띵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줄도 없고 여유로워 보였으나... 내부엔 사람 가득. 혼자 온 사람이 드물었고,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가득한 모습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여유로운 아침 이거 아닌데. 



그리고 불안은 현실이 되어... 



보기만 해도 느끼함 400% 인 아침상이 차려졌다. 

난 정말 아침으로 팬케이크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1인이 식사하기에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곳이었다. 이따가 다른 곳에서 커피 마실 생각으로 우유를 주문했던 것도 실수였다.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왠지 실패한 듯한 나의 아침식사, 그래도 블루베리 남김없이 주워먹고 배부르게 먹고 가게를 나섰다. 





오모테산도로 걷는 길에 만난 점박이 강아지. 

하라주쿠에서 아쉽지 않게 구경하고 싶은 것들을 다 구경하면서 오모테산도로 걸었다. 





나도 그 유명한 오모테산도 커피에 가려고 줄을 서 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바뀐 태도가 있다면, 먹는 곳에 줄을 서 본 것이다. 평소 나는 한국에서도 줄 서서 기다려서 먹는 것은 싫어했고, 나는 미식에는 둔하니깐. 생각하며 먹는 재미를 무시하기 일쑤였는데 이제야 그 재미를 조금씩이라도 알아가는 것 같다. 





멋스럽게 단풍이 내려앉은 오모테산도 커피집 마당. 그 마당에 아직 줄 서 있는 중. 





역시 인테리어의 완성은 물건 없음이다. 

가게 내부로 들어왔음에도 아직 줄을 서 있는 중. 메뉴도 몇 개 없는데 인기가 대단하다. 두근두근. 




이제 내 차례가 코앞.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메뉴를 먹어볼까 했지만, 겨울에 아이스를 먹는 것은 싫기 때문에 결국 뜨거운 것으로 마음의 결정. 





아, 드디어. 나처럼 커피를 받고 들뜬 사람들과 마당에 둘러앉아 각자 커피를 마셨다.

뜨거운 카푸치노와 과자 한 조각 구입. 과자 세트를 사고 싶었는데 벌써 품절이란다.





그래도 나는 과자를 먹으며 커피를 마시니 매우 기분이 좋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 하라주쿠 레이빔즈 매장에서 벼르던 쇼핑을 했기 때문에 더욱 기분이 좋다. 





이 마당에 앉아 있을 그 때는 곧 없어지는지 몰랐던 오모테산도 커피. 

추웠지만 마당에 앉아 있는 그 시간, 오후의 시원한 바람처럼 즐길 수 있었던 커피시간. 




오모테산도 커피를 나오니 플라잉 타이거가 보여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 보았다. 



코 연필깎이도 탐나지만 왠지 이것이 더욱 탐난다. 이것을 사겠다. 




플라잉타이거에선 공구 연필과 귀여운 초록색 부두인형을 샀다. 



플라잉타이거를 나와 다시 오모테산도 거리를 걷는다. 



어느 샵 앞에는 플라스틱 인형들이 예수탄생 장면을 재연 중. 





책에서 본 '스파이럴 마켓'을 가려고 지도를 보면서 걷는 길. 





스파이럴 마켓 도착. 건물 앞에 알록달록 깃발들이 많이 달려 있는 것을 보니 기대된다. 





1층에 전시된 달력 모음전을 한참 구경하고 실내로 들어서니 갤러리 겸 서점인 듯한 공간이 펼쳐지고, 그 옆으로는 살짝 낮은 레스토랑이 위치한 것도 재미났다. 특히 레스토랑은 비즈니스 미팅 중인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갤러리(?)에 놓인 책들을 구경하며 안쪽으로 들어서면 그 공간이 나선형으로 돌아 2층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2층에 있는 매장은 꼼꼼하게 하나하나 다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커다란 임팩트가 있다거나, 무언가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인지는 조금 애매한 샵처럼 느껴졌지만 각각의 셀렉션들은 모두 감도높은 상품들이라, 한참을 구경하고서야 매장을 나설 수 있었다. 





상점을 나서면 이렇게 여유로운 공간이. 이 의자에 앉아 시내를 바라보고 있을 수 있도록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나도 저 의자에 앉아 오후의 햇살을 즐겨 보고 싶지만 그건 생각만으로도 충분. 아무리 여유롭게 놀아야지, 해도 여행자는 여행자인가보다. 





오후의 햇살은 걸으면서 받기로 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다음 목적지는 그 유명한 아오야마 풀즈. 




오모테산도를 걷고 있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친한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혹시 아오야마 풀즈에 갈 거면 에코백 좀 사다줄 수 있냐고. 그 문자를 받으니 이곳엔 또 어떤 예쁜 물건이 있을까 하고 기대가 살짝은 되었는데... 




왠걸. 남들의 여행사진에서 보던 그 모습의 아오야마 풀즈가 아니었다... 다른 브랜드랑 콜라보레이션을 한 건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시커멓고 흥미롭지 않았다. 한 구석에 에코백이 몇 종류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사진을 보고 후배가 고른 에코백과, 내 동생에게 선물로 줄 에코백을 샀다. 

다들 여기 가면 사진에서 본 것 그 이상의 볼 것은 없다는 말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지만 곧 없어진다는 말에 찾아왔던 것. 그러나 사진에서 보던 그 모습조차도 못 보고 이상한 모습만 보고 나왔네... 





예쁨 가득한 사카이 매장도 들어가 구경만 잔뜩. 





하늘은 맑고 기분도 산뜻하니 예쁜 집들도 둘러보며 길을 걷는다. 이 와중에 빠뜨린 것은 점심... 뭔가 때를 놓쳐버렸다. 





이왕 왔으니 이곳도 들러줘야 한다. 근 2년간 자동차 브랜드의 프로젝트를 하며 자료로만 가득 접했던 '인터섹트 바이 렉서스(Intersect By Lexus)'.

자료를 많이 봐서 실물로 보는 게 전혀 새롭지 않았지만, 왠지 한 번 들어갔다 나와야 할 것 같은 마음.  





자료로 보았던 것 그 이상의 새로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으니.

1층은 카페, 2층은 비스트로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까 잊은 점심을 여기서 먹었어야 하나? 싶지만, 나는 다음 목적지인 미술관의 운영시간 때문에 점심을 버렸다... 오모테산도 카페에서 자그마한 빵이라도 먹어서 그저 다행. 카페 앞에선 먹는 기쁨이 어쩌고 해놓고 그새 그 기쁨 버림. 






렉서스 카페에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길 건너에 보인다. 네즈 미술관. 





입구부터 멋스럽구나. 굉장히 일본적이고. 





지금 열리는 전시를 정확히 체크하고 오진 않았는데,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입구에서 보이는 이 미술관의 느낌과도 잘 어울리는 전시를 하는 것 같아 기대감이 증폭. 





네즈 미술관은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지은 미술관. 

입구로 향하는 길, 기대했던 이 길은 역시나 기대를 충족시킨다. 대나무를 가공해 만들어낸 왼쪽의 벽면, 그리고 반대편에서 한창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대나무의 대비도 인상적이다. 





전시 입장권을 끊고 미술관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미술관 전체적으로 조도가 낮아 복도에 전시된 불상들과 멋지게 잘 어울렸고, 그 어두움은 군데군데 이런 멋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획전시장으로 들어서는 입구. 전시는 그림으로 그려진 옛 이야기에 관한 그림들이었는데,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그 이야기를 알아야 관람이 재미있을 텐데 그 이야기들을 다 알지 못하니 그저 그림 감상이 되어 버려 아쉬운 관람이었다. 그렇지만 이 운치있고 지극히 일본스러운 미술관에서 아주 일본스러운 그림들을 보고 나온 것은 만족. 나는 전시로 감동을 받기보다는 이 미술관의 전체적인 느낌을 관람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나보다. 





아직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해가 뉘엿뉘엿 진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이 미술관의 정원을 구경하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 




네즈 미술관은 특히 카페가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데, 잘 다듬어진 이 정원을 보니 그럴 만 하다.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카페 이용은 불가능했고, 오늘의 일정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는 수 밖에. 





카페를 가지 못하니 남은 시간 동안 미술관의 정원을 더 둘러보기로 한다. 




정원이라 생각했던 것을 뛰어넘는 크기였다. 네즈 미술관의 정원은... 오늘 다 거닐어 볼 수 없겠구나 싶다. 





좀 들어가 볼까, 하고 안내판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알록달록 단풍 든 나무들도 아름답고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마치 수목원에 온 듯한 기분도 들면서, 너무 어두워지는 것이 좀 무섭게 느껴졌다. 심지어 아무도 정원에 오지 않아 이 깜깜해지는 숲 속에 나 혼자라고 생각하니 좀 불안해져서(날 여기 두고 문 닫을까봐...) 정원 관람은 중도에 포기했다. 





정원에서 본 새끼줄. 이건 뭘까.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깜깜해져 버리니 정원 안이 무서울 수 밖에. 다시 미술관 안으로 돌아가 뮤지엄샵을 구경하고 미술관을 나섰다.  






겨울이라 해는 빨리 지고, 점심을 챙겨먹지 않은 배가 꼬르륵대는 와중에 마치 구원의 표식처럼 밝게 빛나는 편의점의 표식. 





이 여행 동안 나는 여러 번 푸딩을 먹고 또 같은 맛을 먹는다... 일단 배고픔을 푸딩으로 달래 본다.

아무래도 배가 많이 고프니 어디든 들어가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걷다가 지하보도 안에서 발견한 수프 앤 스톡. 이거다. 

십년 전 처음 여행했던 도쿄에서 기분좋게 (신기해하며) 사 먹었던 기억이 있어 다시 먹어보고 싶은 그 집이라 반갑게 들어서서 주문. 배가 고프므로 두가지 맛 수프와 밥을 선택하고 무난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숙소로 돌아갈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신주쿠 역 도착. 

다른 날 보다 훨씬 일찍 숙소로 돌아온 날인데 하도 일찍 깜깜해지니 티가 안 난다. 





씻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들어오면서 사 온 편의점 간식들을 먹으며 짐 정리를 했다. 알차고 재미난 여행을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가득. 





포근한 흰색 침구도 오늘밤을 지나면 안녕이다.